신 앞에 선 단독자, 키에르고르와 불안
아트앤스터디 지식메일 2013-06-27 (목)
하이데거로부터 이어지는 독일 실존주의와 사르트르로 대표되는 프랑스 실존주의의 원류는 19세기 초·중반,
철학의 변방이던 덴마크에서 활동했던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이다.
당대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칭송받던 헤겔의 사유를 무기력한 사변철학이라 비판하며,
인간의 삶은 결코 '절대 이성'과 같은 보편적이고 추상적 관념 아래 복속될 수 없는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것이라 주장했던 그는, 계몽정신에 따라 모두가 이성을 맹신할 때
그로 인해 진정 중요한 인간의 삶이 함몰되어버리는 위험을 경계했던 선구자였다.
헤겔식 독일 관념주의가 양립 불가능한 것들을 하나로 통합하는데 몰두한다면,
그는 앞면인 것이 동시에 뒷면일 수는 없다는 논리를 통해 '차이, 이질성, 아이러니'에 주목한다.
'철학을 위한 철학'이 아닌, 그의 '삶을 위한 철학'을 들여다보자.
아버지로부터 기인한 종교적 죄의식
키르케고르는 코펜하겐의 부유한 상인 가문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러나 21세가 될 때까지, 자신과 한 명의 형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형제와 어머니가 모두 차례로 병사하는 등
그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못했다.
독실한 신자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종교적 엄숙함 속에서 성장했던 그는 이것이 신이 내린 저주,
즉 살아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도록 하나님이 자신의 부친에게 내린 끔찍한 형벌이라 생각했다.
그의 부친 미카엘 피데르센은 가족을 잃는 비탄에 잠겨,
자신이 시골에서 목동으로 생활했던 가난한 젊은 시절 언덕에 올라 신을 저주했으며,
친척의 도움으로 사업가로 성공한 후 아내가 병들어 앓고 있는 동안
하녀를 강간하여 임신시킨 두 개의 큰 죄를 범했다고 고백했던 것이다.
첫 번째 아내가 죽은 후 결혼하게 된 그 하녀가 바로 키르케고르의 생모였다.
때문에 그는 부친을 죄인으로 보는 감정과 더불어 자신 역시 그와 무관하지 않다는 죄의식에 시달렸다.
부친이 노환으로 사망하자 더 이상 자녀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깊은 안도감을 느낄 정도였다.
레기네 올젠이라는 여성을 사모하면서도 우울증을 앓고 있는 죄 많은 자신과의 결혼 생활이
그녀를 괴롭게 만들 것이란 예감에 일방적으로 혼인을 파기하기도 했다.
이렇듯 그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 직감하며 죽음을 아주 가까이서 느꼈고,
자연스레 '삶'의 문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실존주의의 중요한 사상적 화두와 개념은 이렇게 탄생했다.
인간 실존의 세 단계
키르케고르는 저서 『이것이냐 저것이냐(Enten- Eller)』(1843)와 『두려움과 떨림(Frygt og Bæven)』(1843)에서
인간을 세 유형으로 구분한다.
가장 낮은 첫 번째 단계는 '미적 실존'이요, 두 번째는 한 단계 높은 '윤리적 실존'이며,
이를 초월한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종교적 실존'이다.
'미적 실존'은 (고매한 예술적 상태와 같은 것이 아니라) 욕망과 쾌락만을 쫓으며 물질세계에서 고민 없이 살아가는 부류,
즉 자의식이 등장하기 전의 '전-반성적 단계'로서 비본래적이며
하찮은 수동적 삶, 마치 돈 주앙의 생과 같은 모습을 칭한다.
그러나, 즐겁기 위해 쾌락을 좇으면 좇을수록 오히려 허무와 절망, 권태에 빠져 허우적거릴 뿐이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인간은 감각적 삶을 거두고 결단을 통해 더 높은 차원으로 이행하도록 추동되니,
양심에 따라 보편 법률을 준수하고 상징적 언어 체계 아래 질서 있는 삶을 사는 '윤리적 실존'이 그것이다.
이는 우리가 타인과 관계 맺음을 통해 친구, 가족, 동료 등을 만들면서
사회 속에서 구체적 존재자로 살아가는 단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양심 혹은 이성에 따라 도덕적으로 살아가고자 발버둥친다 한들,
인간이란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타고났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 존재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이 같은 괴리를 목도하는 순간 우리는 그저 웃게 되지만,
'아픔에서 비롯되는 웃음'을 터트린 이제 다시 한번 결단을 통해 불합리함에도 믿는 '종교적 실존'으로 나아가게 된다.
초월자인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는,
이성을 통해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종교적 실존'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이성이나 양심이 아니라 무한한 존재인 신을 통해 진리를 받아들이는 단계이자,
자신을 '자유로운 존재'라 생각했던 '윤리적 실존'의 치명적인 착각을 극복하고
신 앞에 '죄 많은 존재자'로 서게 되는 단계이다.
그때 신의 음성은 결단을 도모하는 내면의 음성으로 매 순간 스며드는 것이다.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의 주체의 불안: 자유에의 현기증
키르케고르가 선취했던 업적 중 가장 뛰어난 한 가지는 '불안' 개념을 인간의 본질적 차원으로 승화시켰다는 데 있다.
인간이란, 조화롭고 평온한 상태가 아니라 무한과 영원, 자유와 필연의 끊임없는 충돌 속에 놓여있다.
또한 매 순간은 근본적으로 정해진 것 없는 '무'와 같기에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충만하고 풍요로워 보이는 것 이면에는 언제나 불안을 자아내는 '결핍과 부정'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위태로운 칼날 위에서 '이것이냐 저것이냐',
다시 말해 미적 실존과 윤리적 실존, 종교적 실존 중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자아실현 과정'을 보여주는 인간 실존의 세 유형은 저마다 질적으로 다르기에
헤겔식 변증법처럼 한데 모이거나 A에서 B로 서서히 변모하는 것일 수 없다.
그것은 결단을 통해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도약'할 뿐이다.
불안은 '신 앞에 선 단독자'가 필연적으로 가지게 되는 괴로운 감정이지만,
그러나 이는 동시에 스스로가 '자율적 존재자'임을 알려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불안하다는 것은 내가 어떤 운명에도 속박되어 있지 않기에 나의 의지대로 삶을 엮어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키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생의 본질적 정서인 불안은 곧 '자유에의 현기증'이라고.
아이러니의 철학자, 키르케고르
덴마크어로 쓰여진 키르케고르의 저서는 사후,
다른 언어로 번역되면서 독일을 기점으로 점차 새로운 사유의 초석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전체가 아닌 특수를, 보편이 아닌 환원 불가능한 개인에 주목하고자 했던 그의 철학은,
우리가 단지 태어났다고 해서 '주체'인 것이 아니라 주어진 책임을 다할 때 진정한 주체가 됨을 알려준다.
그 책임이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시시각각 제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을 의미함은 물론이다.
진리는 우리 외부에 있는 객관적인 무엇이 아니라, '이념을 위해 사는 것' 그 자체이다.
따라서 진리는 합리적이고 과학적 언변으로는 전달될 수 없는 불명료하고 주관적인 어떤 것이다.
이러한 진리의 내용에 걸맞게 그의 저서들은 주로 익명의 작가에 의한 대화체 형식,
마치 대화 상대자가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처럼 쓰여져 있다.
흥미롭게도, 자신이 중시했던 아이러니를 글쓰기 방식으로 취했던 셈이다.
- Written by cowgirlblues (cowgirl@artnstudy.com)
'교양,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우유팩은 사각형이고 음료수 캔은 원통형일까? (0) | 2022.12.16 |
---|---|
어떤 이의 스무 살은 너무나도 깊다 (0) | 2022.12.15 |
불교의 시간 개념 (0) | 2022.12.13 |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참된 뜻은 무엇인가 (0) | 2022.12.12 |
피라미드에 얽힌 이집트의 수학 이야기! 작도와 왕도 (1) | 2022.12.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