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렛에 얽힌 러시아 작가 이야기
아트앤스터디 지식메일 2010. 4. 22
6연발 리볼버에 하나의 탄환만 넣은 후 6명이 차례로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겨서 운에 제 목숨을 맡기는 게임,
‘러시안 룰렛[Russian roulette]’을 아는가?
이것은 우연과 불확정성의 원리를 따른다는 점에서 일종의 도박이다.
때문에 어원적으로 ‘돌아가는 바퀴’를 뜻하는 룰렛은
카지노 도박에서 ‘0부터 36까지 나눠진 회전판 안에서 구슬을 돌려
그것이 어디에서 정지하는지 맞추는지에 따라 돈을 따거나 잃게 되는 게임’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 룰렛과 묘하게 얽혀있는 러시아 대문호들의 비밀을 살펴보자.
☑ 러시앗 룰렛, 푸슈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인생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듯한 이 유명한 시는 19세기 러시아 근대문학의 아버지이자 국민 시인,
알렉산드르 푸슈킨[Pushkin, Aleksandr Sergeevich]의 작품이다.
그런데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노여워 말라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목숨을 담보로 직접 신청한 결투 때문에 38세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하고 말았다.
무엇이 이 인간적인 시인을 그토록 분노케 한 것일까?
푸슈킨은 자신의 아리따운 아내, 나탈리야 곤차로바를 무척 사랑하였다.
한 무도회에서 첫 눈에 반한 후 애끓는 구애 끝에 결혼에 성공했지만 그들의 관계는 결과적으로 행복하지 못하였다.
푸슈킨보다 13살이 어렸던 그녀는, 차르(*러시아 황제) 제정 시대에 민중의 편에서 삶의 애환을 노래하고
귀족 및 지주의 횡포를 비판했던 문인의 아내에 적합한 인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교계의 미인들이 흔히 그러하듯, 그녀 역시 유행을 좇아 돈을 낭비했고 뭇 남성들의 시선을 즐겼다.
그녀를 둘러싼 연애 관련 추문이 이어질수록,
그렇지 않아도 귀족들의 시기 어린 모함으로 힘들어하던 푸슈킨의 고통 또한 커져만 갔다.
게다가 그는 나탈리야에게 관심을 보이던 황제 니콜라이 1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재정난에 시달려야 했다.
나탈리야와 바람둥이 근위병 단테스와의 염문이 사교계의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자,
어느 날 ‘간통한 여자의 남편’이라 쓰여진 익명의 편지가 푸슈킨에게 배달되었다.
이를 귀족 사회의 탐욕에서 생긴 농간이라 보았던 그는,
아내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단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하게 된다.
‘둘 중 한 사람이 치명타를 입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두 사람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에서 열 발짝 떨어져서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고,
운동과 거리가 멀었던 시인 푸슈킨은 복부에 치명상을 입어 이틀 후 사망하고 말았다.
마치 러시안 룰렛처럼 잔혹한 이 결투 소식을 듣고 당시 수만 명의 인파가 푸슈킨의 집 주위를 에워쌌다고 한다.
그의 대중적 인기를 견제하여 장례식을 비밀에 부쳤던 황제의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가 사랑했던 나탈리야는 4명의 자녀를 데리고 몇 년 후 재혼했지만,
여전히 그는 러시아 국민 전체로부터 영웅으로 추앙 받고 있다.
☑ 카지노 룰렛, 도스토예프스키
1880년, 한 소설가가 푸슈킨을 추모하기 위한 동상 제막식에서
‘대단한 축하연설’을 통해 광장에 집결해 있던 군중을 흥분과 감동 상태로 만들어 버렸으니,
이는 바로 『죄와 벌』의 저자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i, Fyodor Mikhailovich] 이다.
톨스토이와 더불어 러시아 문학의 선봉에 서있는 작가지만, 그의 낭비벽과 과시욕은 젊은 시절부터 유명했다.
특히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도박’은 평생 그를 괴롭힌 트라우마였는데,
가진 돈을 다 잃고 다시는 도박에 손대지 않겠다고 부인에게 애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출판업자들에게 선불로 받은 돈을 룰렛에 탕진하곤 했던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돈을 잃을수록 언젠간 돈을 딸 것이란 기대감이 더욱 커져가는 상황을 ‘도박자들의 오류’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형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이 룰렛 게임의 법칙을 파악했고 곧 돈을 벌어들일 것이라 공언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도대체 어떤 연유로 그는 도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사실 도스토예프스키는 지병이었던 간질이 발작하기 직전 경험하게 되는 강한 환영이
글을 쓰는 데 있어 자양분이 된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약을 오래 복용하면 내성이 생기듯,
발작은 갈수록 강렬한 예술적 자극을 원하는 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모든 돈을 잃고 난 절망 상태에서 얻게 되는 ‘창조적 에너지’를 위해 강박적으로 도박에 매달렸던 것이 아닐까?
푸슈킨에게 룰렛이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그것은 자기 파괴를 통해 예술적 승화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는지 모른다.
이 두 러시아 문학가가 하루 간격으로 죽음을 맞이하였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은가?
(푸슈킨 사망일 : 1837년 2월 10일 , 도스토예프스키 사망일: 1881년 2월 9일)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역시 룰렛처럼 우연과 불확정성의 지배를 받고 있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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