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초적 본능
아트앤스터디 지식메일 2012. 11. 08
벤야민은 그의 저서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윤락녀를 자본의 중심에 있는 하나의 대상으로 묘사한 바 있다.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에서 창녀는 자본을 빨아들이는 악마와 같은 존재로 인식됐다.
자본이 있는 곳에는 항상 창녀가 있었다.
창녀는 한 시대에서 하나의 상징이며 가변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그럴까?
벤야민은 윤락녀만이 아니라 잘 만들어진 상품을 섹시한 창녀로 보기도 했다.
'섹시'의 요소는 상품이 지녀야 할 필수적인 덕목인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온갖 상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고, 파는 모두를 흥정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상품은 '난 당신에게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누군가의 지갑을 자연스레 열기 위해 애쓴다.
그렇다면 무엇이 '섹시'한가.
취조자를 농락하는 샤론 스톤의 스커트 속 다리가?
흑백 컬러의 광고 속 도드라진 붉은색 입술이?
물 흐르는 듯한 굴곡진 몸매가?
광고 사진에서 다리 가랑이 사이에 상품을 두거나, 입술 등의 육체를 강조하는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종류의 사진을 본 사람들의 시선이 어디를 가장 먼저 향하는지는 숱한 실험에서 증명됐다.
어느 화보 회사의 프레젠테이션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거기에는 한 연예인의 화보 마케팅 전략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회사는 대중의 흥미를 끌기 위해 출연해야 할 TV 프로그램 목록을 빽빽이 적어 놨다.
또한, 화보를 어떻게 더욱 야하게 포장할 수 있을지 캐치프레이즈들을 제시해 놓았다.
그 안에서 연예인은 또 다른 상품이었다.
자본은 돈을 끌어모을 '육체적 상품'을 끝없이 물색한다.
이제 그 범위는 잘 알려진 연예인을 넘어 스포츠 선수, 일상을 사는 일반인에까지 촉수를 뻗친다.
육체적 매력이 자본을 유통하는 매개가 된다는 것을 인지하기란 얼마나 쉽던가.
단지 광고에서만 이용하는 화면 구성은 아닐 것이다.
당연히 육체적으로 매혹적인 데 눈길이 간다.
또 다른 '섹시'한 상품은 요즘 언론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언어에 있다.
요즘 언론 매체는 보도보다는 누가 누가 더 '섹시'하게 낚는, 제목을 쓰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경악! 깜짝! 알고 보니! 깜놀! 설마 했더니…'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어휘들과
'아니라더니 7명을 동시에…' 등 이중적인(야한) 의미로 된 제목의 기사는
정말 '알고 보면' 놀랄 만하거나 욕망을 자극하는 내용은 아니다.
이런 기사들은 클릭을 잡아내 조회수를 올려 언론사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광고 단가도 높인다.
'섹시'한 언어들로 구성된 기사가 또 다른 상품이 되어 독자를 유혹한다.
평범한 제목의 기사는 별 볼 일 없을 것 같고, 이런 식의 섹시한 제목의 기사는 클릭 한 번이면 호기심을 해소하고,
유혹의 끝을 맛볼 수 있을 듯하다.
상품은 낡아 그 효용성이 없어지면 버려지고 만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그 시간은 점차 단축된다.
온갖 상품들 속에서 '섹시'한 코드만 만나느라 지쳐가고, 가치를 매기는 일 자체가 점점 사라지는 듯하다.
인간에게 가치가 매겨진다는 말은 반대로 가치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 되지 않을까?
모두 '섹시'한 상품에만 파묻혀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 Written by heyleeyu (heyleeyu@artnstud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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